2014년 10월 8일 수요일

내안의 교회는 구원의 방주인가 침몰하는 배인가?

마태복음 16:15~19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예수님이 처음으로 말씀하셨던 교회는 베드로의 고백을 바탕으로 세워진 무형의 존재이다. 이 말씀을 보면 교회의 본질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고백하는데 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로 고통받는 세상에서 영원히 죽지않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로 그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시고 그 방법들을 말씀해 주셨다.

창세기 6:7~9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가 살던 세상도 죄악이 만연하여 하나님은 모두 물로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던 노아가 만든 방주를 통하여 그의 가족과 동물들은 물로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만드신 교회가 구원의 방주가 되려면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구원의 주로 고백하면 된다. 그러면 구원의  방주 안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수박 겉핥기로 건물인 교회안에 있으면서도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고 그를 잊어버리고 다른 이야기만 한다면 구원의 방주 밖에 있는 것이다. 침몰하는 배도 아닌 것이다.

노아의 방주의 열쇠가 노아에게 있었던 것처럼,
자, 벌써 구원의 방주된 교회의 열쇠가 그를 구원의 주로 믿고 고백하고 그의 선한 말씀을 따르는 자들의 손에 주어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은 기도이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기도하라 
본문 : 시편 56편 1 - 13절 마경훈 목사 

본문 : 시편 56편 1 - 13절(개역개정) 
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2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5 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 
6 그들이 내 생명을 엿보았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발자취를 지켜보나이다 
7 그들이 악을 행하고야 안전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3절에 보면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정말 두려울 만큼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입니다.당시 다윗은 상당히 위험하고 비참한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힘이 들면, 인생의 짐이 너무나 무거우면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때 다윗도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정신이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계속해서 추격합니다. 추격을 견디다 못한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곳은 다윗에 의해서 죽은 거인 골리앗의 땅 블레셋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골리앗의 땅으로 도망을 치면서 제사장 아히멜렉으로부터 받은 골리앗의 칼을 손에 든 채로 갔습니다. 골리앗을 죽인 장본인이 골리앗의 칼을 든 채로 골리앗의 땅으로 갔으니 기름을 짊어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했던 것은 그만큼 정신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 56편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밝히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2절에서는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라고 말합니다. 다윗을 치려고 하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많았다는 것입니다. 5절에 보니까 사람들이 다윗이 하는 말마다 곡해합니다. 좋은 말을 해도 나쁘게 받아드립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꼬투리만 잡는 것입니다. 6절에 보니 그들은 다윗의 생명을 죽이려 합니다. 그리고 모여 숨어서 다윗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합니다. 7절에 보니까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사람들은 상황이 좋은가 어려운가에 관심을 갖지만,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아니면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의지하느냐를 보십니다. 
다윗은 어땠습니까? 다윗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서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3절에 보니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라고 말했고, 4절에서도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라고 말하고, 10절에서는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라고 고백합니다. 11절에서는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아니한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행동은 기도였습니다. 시 56편은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다윗은 1-6절까지 원수들이 자기에게 행하는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아뢰고 있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자기를 괴롭히는 친구들에 대해서 엄마, 아빠에게 일러바치듯이 다윗도 자기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일러바치는 듯합니다. 그러면서 7절에서 원수들을 심판해 주실 것을 구합니다. [그들이 악을 행하고야 안전하오리이까(악한 자들이 안전하게 산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하나님 원수를 갚아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를 하면 다윗은 두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일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해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무엇을 해주시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두려움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사람이 당하는 많은 형벌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두려움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두려움 그 자체가 형벌을 가져다줍니다. 요일 4:18에 보면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두려움은 그 자체가 형벌입니다. 어떤 모임에서 분위기를 up시키기 위하여 돌아가면서 노래하기로 했습니다. 이 때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자연스럽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야 괜찮겠지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그 때부터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자기 순서가 가까워 올수록 가슴은 뛰기 시작하고 두려움과 불안으로 손발까지 떨리기 시작합니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신나는 시간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고통의 시간입니다. 
두려움을 갖게 되면 자신이 가진 능력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판단력도 흐려집니다. 
다윗은 그런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더니 두려움이 물러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3절에서는 두려워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4절에 보니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라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불안합니까? 세상사는 것이 두렵습니까? 그렇다면 나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의지하는 그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두려움은 물러가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가운데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제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두려움이 찾아오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그 때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있으면 목회할 맛이 사라집니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소망은 작아지고 절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다가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시는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하면 마음에 믿음이 확 들어오게 되고 두려움은 차츰 물러가고 점점 평안이 충만해 집니다. 그러고 나면 놀랍게도 제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감당하게 됩니다. 
두려운 일이 발생하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지 마세요. 불안해하고 근심하며 시간을 보내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세요. 두려움을 사라지고 평안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환경을 바꿔주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눈물을 기억하십니다. 
세상 살다보면 눈물 흘릴 일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무 곳에서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주책없는 눈물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리면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8절에 보니까 기도하는 사람들의 눈물은 주님의 눈물 병에 담으십니다. 그리고 그 눈물이 눈물 병의 아구를 채우게 되면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물병에 물을 붓는데 가득 차게 되고 가득 차도 붓게 되면 흘러넘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많이 울면 울수록 좋은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부탁을 하는데 그냥 부탁하면 들어 줄 수도 있고 안 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면서 부탁을 하면 왠만하면 다 들어주게 되어 있습니다. 
왕하 20장에 보면 히스기야 - 몸에 병들어서 죽음을 앞두고 기도하니 하나님의 응답이 떨어졌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눈물 흘릴 일 많으시죠. 사람 앞에서 울지 말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우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눈물이 하나님의 눈물 병에 채워지게 될 것이고 그 눈물이 하나님의 응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시 84:6절을 찾아보세요. 

3.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편이 되어주십니다. 
9절에 보면 다윗은 고통 중에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셔서 원수들이 물러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신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시 118:5-6 고통 중에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원수를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여호와는 내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몸이 작고 외소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형제들은 몸집이 큰데 유독 형제 가운데 그 사람만 외소 합니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어릴 때 울지 않아서 엄마가 젖을 잘 물려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울면 엄마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젖을 먹이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르짖어 기도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자식 중에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엄마에게 딱 붙어서 아양을 떨고 결국은 필요한 것을 받아내는 여우같은 자식이 있는가하면, 필요한 것이 있어도 곰 같이 참아내기만 해서 아무것도 받아내지 못하는 자식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 편에 서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보면 받게 되는 여러 가지교훈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을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형에서를 20년 만에 만나는데 형이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 때 야곱이 기도하고 하나님이 야곱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셨습니다. 에서의 마음이 녹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는 에서보다 기도하는 야곱의 편에 서주셨습니다. 
힘들어도 새벽에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기도하는 내편에 서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의 편에 서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는 것보다는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변화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의 편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감사거리를 주십니다. 
12절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감사제를 드리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응답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감사거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감사거리를 주신다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달리생각하면 기도하면 감사거리가 보이게 하십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한 교회에 부임하여 부임 심방을 하는데 어느 집사님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벽에 보니까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해서 상장을 가득 걸어 두었습니다. 목사님은 "아들이 공부를 참 잘하네요." "예, 우리 아이는 머리가 비상합니다." 목사님이 또 집사님 얼굴을 쳐다보면서 "집사님은 참 미인이십니다." 하니까 그 집사님이 "예, 저의 친정어머니가 예뻐서 저도 예뻐요"라고 합니다. 목사님은 또 "가구가 참 좋네요. 텔레비전도 오디오도 아주 좋은 것 갖고 계시네요." 하니까 그 집사님이 "예, 저의 남편이 돈을 잘 벌어서 괜찮은 가구를 들였어요."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건드려도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지요"라는 말이 안나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하나님이 은혜를 거두시면 좋은 머리가 무슨 소용 있으며, 예쁜 얼굴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거두시면 그 날로 무너지는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한번 고백해봅시다. 따라 해보십시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가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는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어 잘한다고 잘살고, 성공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 합니다. 필리핀 사람들 영어 잘합니다. 그래도 못살잖아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영어는 하나님과 사람을 더 잘 섬기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5.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이 실족하지 않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별일 아닌데 시험에 들고 실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은 실족하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한편 봤습니다. [록키 발보아]라는 영화입니다.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최고의 헤비급 챔피언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한 록키. 록키의 즐거움은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들에게 과거에 화려했던 자신의 복싱경기 얘기를 들려주는 것. 그러던 어느 날, 한 유명 스포츠 TV에서 록키와 현재 헤비급 챔피언인 매이슨 딕슨과의 가상경기를 중계합니다. 이 가상 경기는 상상 외의 큰 인기를 끌고 딕슨의 프로모터와 언론은 록키와 딕슨의 실제 경기를 록키에게 제안합니다. 이 소식은 전 미국을 들끓게 만들고, 록키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일생일대의 대결을 앞두고 그의 오랜 친구이자 트레이너인 듀크와 아들의 도움을 받아 훈련에 들어간 록키. 그리고 마침내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젊은 챔피언 복서 메이슨에 맞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마지막 경기를 펼치는데. 결국 게임에 지긴 했지만 그 영화에서 록키는 영화를 보는 사람들 안에 있는 도전정신에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대사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록키가 아들에게 하는 말인데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네가 어떻게 얼마나 세게 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야...네가 얼마나 세게 맞았던지간에....네가 어떻게 일어서서 나아갈 수 있느냐가 중요한거야..그게... 승자가 승리하는 이유야.]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이 실족하지 않도록 붙들어주십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지더라도 여덟 번 일어납니다. 13절에 보니 다윗의 아름다운 고백이 나옵니다. 주님이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져주셨답니다. 주님께서 기도하는 다윗에게 빛을 비춰주셔서 실족하지 않게 하셨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살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특히 지금은 말세지말입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는 우리의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일들을 행하십니다. 

1.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두려움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2.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눈물을 기억하십니다. 
3.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편이 되어주십니다. 
4.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감사거리를 주십니다. 
5.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이 실족하지 않게 하십니다. 

2014년 9월 4일 목요일

세계인구로 본 종말의 시기와 의미

세계인구를 추정하는데 잘 알려진 아래의 공식으로 계산할 수 있다
n=세대, 2C = 자녀수(딸,아들), x=평균 생존 세대수


c=2, x=2로 가정하여 계산하면
5세대 후 인구 = 96명
10세대 후 인구 = 3070명
15세대 후 인구 = 98,300명
20세대 후 인구 =  3,150,000명
30세대 후 인구 = 3,220,000,000명
한 부부로 시작하여 30세대가 지나면 인구는 무려 32억명으로 증가한다
여기서 한세대만 증가(31세대)해도 64억명으로 증가하고 32세대는 무려 129억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세계인구에 대한 그래프들은 많이 나와 있다
21세기에 진입하여 수직으로 상승하는 그래프를 보면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짐작할 수 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트랜드를 보라(Vertical Ramp)
저 자체적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2011년 기준으로 세계인구는 70억명이다




현재 인구 증가율은 약 2%이지만 과거에는 이보다 훨씬 증가율이 낮았는데 3세 이하의 생존율이 낮아서 0.1% 미만이었다고 알려진다
(사실 영아들이 인종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모두 천국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면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세계인구는 얼마였을까?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세계인구 추정치는 2.1억명 수준이다
1492년 5억, 1804년 10억, 1922년 20억, 1959년 30억, 1975년 40억, 1986년 50억, 1999년 60억, 2011년 70억
2025년에는 90억, 2039년에는 130억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인당 경작지는 2006년에 인당 1.15에어커가 있었으나 2039년에는 손실분까지 포함하여 인당 0.53에어커만 남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도 식량이 부족한데 경작지가 절반이하로 감소한다면 식량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홍수 후 현재까지 살았던 인구는 약 105억명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인구는 전체에서 약 3~4% 정도에 해당한다고 한다
인구증가율 측면에서 보면 시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적당한 타이밍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아래 그래프다
노아 대홍수 심판의 인구 증가 트랜드와 현재의 인구 증가율 트랜드가 유사하다는 것이다
노아 대홍수 당시 인구 증가 트랜드와의 유사성은 오늘날 인구 통계학 측면에서도 종말의 때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노아 홍수 이전에는 수명이 길었기 때문에 창조 후 약 2300여년의 기간동안 홍수전 세계인구는 약 90억명으로 추정한다
그들 대다수는 수명이 길어 살아 있었고 홍수로 일시에 죽은 그들을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3일동안 음부에 영으로 내려가 복음을 전파하셨다
이들은(90억) 홍수 때에 음부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의 수많은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베전 3:19~20) 

홍수 후 약 5000년의 세계인구를 추정하면 현재의 인구에 근접한다
실제로 1650년에서 1850년 사이의 인구 변화에 기초한 인구 통계학 평가 자료는 BC 3300년경에는 오직 한 가족만이 존재했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 대홍수가 발생한 시기는 맛소라 사본의 연대기에 따르면 약 bc 2456년, 70인역 연대기에 의하면 약 bc 3071년이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류가 100만년전에 존재해 왔다면 인구성장율을 0.01%로 매우 낮게 잡아도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인구는 2*10^43으로 2뒤에 0이 43개나 따라온다
그 많은 인구를 빽빽히 채워도 아홉개의 행성을 가진 태양계 1000개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인구 통계학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역사는 성경의 연대기에 잘 맞아 떨어진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또 있다
그것은 홍수 후 지금까지의 누적 인류가 105억명이라고 할 때 이 중 70%(73억명)가 생존해 있다는 것이다
단 30%(32억명)만이 죽은 상태이다
만약 오늘날 휴거가 발생한다면 홍수 후 전체 인류의 70%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예수를 몰라서 구원의 기회가 없었다는 주장도 인구통계학 관점에서 보면 빛이 바래진다)
휴거 때에 죽은 자 중 순교자들이 먼저 부활한다고는 하지만 휴거의 주인공은 결국 대다수 살아있는 자들 70%를 위한 사건이 될 것이다
인구 통계학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고 성경에 그렇게 자주 재림에 대한 성도의 준비를 강조한 이유일 것이다

10처녀 비유에서 보면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는 비유가 나온다
이 비유에서 말하는 시사점은 일단 이벤트가 일어나면 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빨리 교회로 달려가서 회개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벤트는 번개가 번쩍이는 것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비유의 또 다른 시사점은 그 때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도
있다
하루 이틀 전이나, 한달 전 쯤에 예측 가능한 징조들이 나타나서 준비 할 수 있게 할 수 없다는 교훈도 있다
한번 사건이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
결국 준비라는 것은 지속적인 과정일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처녀들이 잠을 잔다는 것은 종말의 지연성, 그로 인해 인내의 시기에 살아남은 신부들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옮김 : http://blog.naver.com/acoloje

2014년 9월 2일 화요일

사춘기 대화법 :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하지 말아야 할 말 해야 할 말[강금주, 북클라우드]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부모의 말부터 달라져야 한다

고분고분 말 잘 듣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대답이 느려지고, ‘다 귀찮다’며 짜증을 부리기 시작한다. “응, 알았어”, “네, 그럴게요” 하던 것도 “왜?”, “왜 그래야 돼요?”, “안 하면 안 돼?”라고 말대꾸하고 반항한다. 아이에게 사춘기가 온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행동이며, 말투며, 사소한 버릇까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데, 뭐라고 해 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고 감정만 상할 것 같아서 아이 눈치만 보며 끙끙거린다. ‘저 더러운 성질 안 건드리는 것이 낫지’, 혹은 ‘나만 이러는 건 아닐 거야. 사춘기 아이를 어떻게 말로 다스리겠어’ 하면서 그 자리를 피해 버린다. 
하지만 그렇게 참고 넘어갈수록 아이의 사춘기 문제 증상은 심해지고, 대화도 점점 힘들어진다. 결국 아이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순간을 놓치게 되고, 어느덧 아이와 대화가 되지 않는, 대화를 하지 못하는, 대화를 할 수 없는 부모가 된다. ‘말썽 부리는 애와 사는 부모’가 아니라 ‘대화를 못하는 부모와 살고 있는 아이’로 상황이 역전되는 것이다. 
청소년과 학부모 전문 상담자이자 [십대들의 쪽지]의 발행인으로, 지난 30년간 대한민국 십대들의 생각과 마음을 읽어 온 저자는 부모가 사춘기 아이와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려면, 그 답은 결국 ‘대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말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사춘기 문제 증상도 일차적으로는 ‘대화’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부모의 대화법부터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십대들의 쪽지] 강금주 대표가 알려주는
아이 마음을 여는 부모 대화법

그런데 ‘대화가 사춘기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더 답답해한다. 크렘린 궁전보다 더 꽁꽁 닫힌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열고 대화를 해야 할지, 아이에게 어떤 말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쩌다 대화를 시작해도 서로 마음에 상처만 남길 뿐 대화는 전혀 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그렇다면 아이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부모는, 왜 내 아이와 대화가 어려울까? 
이에 대해 저자는 가장 먼저 부모 자신부터 돌아볼 것을 권한다. 사춘기 아이와 대화가 안 된다는 부모는 대체로 듣기보다는 말하는 부모이거나 아이의 감정은 읽지 않고 해법만 이야기하는 부모, 모든 대화의 결론을 ‘성적’으로 끝내는 부모, 아이에게 이상한 점을 발견해도 ‘별일 없을 거야’ 하면서 묻지 않고 넘기는 부모일 확률이 높으며, 이러한 태도와 화법이야말로 대화를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터진 후에야 ‘우리 애한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고 의문을 갖는 부모는 일상적인 대화가 없었다는 뜻이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춘기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편안하게 대화하고 싶다면 부모 자식 간의 대화에도 기술이 필요하며, 부모는 그에 관한 공부와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또한 아이가 문제없이 잘 자라도록 돕기 위해서는 부모가 평상시 반드시 익혀야 할 대화 습관이 있다고 말한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먹고 자란다!
내 아이의 올바른 변화와 성장을 위해 꼭 알아야 할 대화의 기술

이 책은 사춘기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문제없이 대화하고 싶은 부모들을 위한 대화 지침서다. 사춘기 아이와의 대화를 남북정상회담만큼 어렵게 생각하는 부모들을 위해 아이가 하는 말의 속뜻을 읽어 주고, 이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화를 이끌어 가면 좋은지 그 방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특히 편안한 관계를 만들어 주는 9가지 대화의 기술은 사춘기 아이뿐 아니라 모든 학부모들이 미리 익혀 두면 좋은, 매우 유용한 대화법이다. 시간, 장소, 말투, 꾸짖기, 질문하기, 되묻기, 칭찬하기, 추임새 넣기, 침묵 등 9가지 대화의 기술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도와준다. 
이 밖에 저자가 두 아이의 사춘기를 겪으면서 경험한 ‘주말 1시간 대화법’은 아이의 마음과 생각을 성장시키는 시간으로 활용하기 좋으며, 아이가 보이는 문제 상황별 대화법은 내 아이의 사춘기 문제 증상을 말로 변화시키고 싶을 때 읽으면 도움이 된다. 책에 소개된 대화법과 실전 지침은 30년간 수많은 십대와 학부모들을 상담하면서 쌓아온 저자만의 경험과 노하우이기에 믿을 수 있으며, 실제로 이 대화법을 통해 많은 부모들이 사춘기 아이와의 어긋난 관계를 회복했다. 
아이가 밝고 따뜻하고 근심이 없는 행복한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일상 속에서 자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런 대화 속에서 아이는 위대한 인생을 설계한다. 사소한 말이 생략되었을 때 아이가 잃는 것은 사소한 기회가 아니라, 부모의 지지 아래 만들어 갈 수 있는 위대한 인생의 기회다. 더 늦기 전에, 바로 지금, 내 아이와 대화를 시작해 보자. 이 책이 그 길을 걷는 당신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