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에 관한 기록은 구약 성경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도 발견되는데, 그 가운데 특별히 히브리서는 4장에 걸쳐 성막에 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를 합치면 적어도 성경전체에서 50장 정도가 성막에 관한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막에서 드려진 제사와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비교하고 있는 히브리서 9장 23절에서는 성막을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24절에서는 “참 것의 그림자”라고 설명합니다. 성막이 천국의 비밀을 알려주기 위한 일종의 모형도요, 교보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성막을 연구함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천국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성경에 등장하는 다양한 성막의 명칭들을 살피면서 그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a. 장막(tent, 출 25:9)
성막은 먼저 장막(tent)으로 불렸습니다. 장막은 말 그대로 텐트라는 뜻입니다.
애굽 땅을 급히 빠져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장막에서 생활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머물던 자리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집을 짓지 않고 장막에서 거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시기 위해 저들이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장소인 성막도 ‘장막’으로 지으라 하신 겁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성막 전체의 골격뿐 아니라, 그곳에 배치된 성막의 기구들도 옮기기 쉽도록 기구 한편에 고리를 만들고 거기에다 이동할 때 사용할 채를 끼워놓으라 하셨습니다. 떠나라 하시면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는 처소 준비를 하라는 겁니다.
이처럼 이동성전인 장막은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영원히 머물 곳은 없습니다. 이곳에서 장막을 치고 살다가 언제든지 하나님이 떠나라 하시면 장막을 거두고 떠나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서 사도 베드로는 성도의 삶을 “나그네와 행인”(벧전 2:11)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 나그네입니다. 잠시 있다가 가는 겁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가야 할 우리의 본향,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b. 성막(tabernacle, 출 26:1)
성막이란 ‘성스러운 장막’이라는 뜻입니다. 성막이 성스러운 장막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금과 은으로 만들어져서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머무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막 가운데서도 특별히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장막이 쳐진 안쪽의 공간을 ‘성소’와 ‘지성소’로 불렀습니다. ‘거룩한 곳’, ‘지극히 거룩한 곳’이라는 뜻입니다.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이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번제단과 물두멍을 통해 죄를 정결케 하는 의식을 치러야 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머무시는 곳이기에 이곳을 찾는 자들도 거룩해야 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라”(사 59:1,2)하십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머무시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러기에 이곳을 찾는 자들도 거룩해야 하는 겁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레 11:45)하십니다.
c. 회막(레위기 1:1, tent of meeting)
‘회막’은 말 그대로 ‘만남의 장소’라는 뜻입니다. 죄인이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회막이었습니다. 인간이 범죄하기 전에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영적인 교제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범죄 한 순간부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게 되었고(창 3:8), 이때부터는 제단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회막은 바로 속죄의 제사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번제단에서 몸을 씯고,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씯은 뒤,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회막입니다.
이 회막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가 화목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얻게 된 것입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면 ‘회막’을 찾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야 하고, 십자가의 도가 바르게 선포되는 교회를 찾아가야 합니다. 회막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d. 증거막(민 1:53, tent of testimony or witness)
증거막은 ‘증거하는 장막’이라는 뜻입니다. 성막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출애굽기 33장 9절에서는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셨다”했습니다. 민수기 16장 43,44절에서는 “모세와 아론이 회막 앞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했습니다. 증거막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는 곳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증거막’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교회는 기갈한 영혼들이 말씀을 통해 만족을 얻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상처받은 영혼들이 찾아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해 답답해 할 때는 말씀을 통해 가야할 길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증거막’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치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교회의 강단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세상의 철학을 가르치는 곳이 되고 있습니다.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와 이벤트가 말씀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영적인 기갈’(암 8:11)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제라도 성막을 ‘증거막’이라고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선포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결 론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머물면서 가지고 내려온 것은 십계명이 적힌 돌판 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인 성막의 설계도도 함께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십계명이 율법을 상징한다면, 율법의 역할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죄를 깨달았으면 이제 성막으로 찾아가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성막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머무시는 성소입니다. 성막은 광야 길을 걷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예비하신 이동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셨습니다. 성막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역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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