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4일 수요일

1. 하나님의 능력을 찬송하십시오
 사람은 영광을 받고 능력이 있으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 영광과 능력을 하나님께 돌리는 삶을 잘해야 합니다(1절). 능력이 있다고 생각할 때 능력의 원천이 하나님임을 잊지 마십시오. 결국 능력의 하나님을 찬송할 때 반드시 생기는 삶의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입니다. 잘 나갈 때 겸손하면 계속 잘 나가는 인생이 되고 능력이 있을 때 겸손하면 계속 능력이 머물게 됩니다. 

 겸손한 예배자는 믿음 생활에 대해 쉽게 실망하지 않습니다. 어떤 교인은 믿음생활에 대해 이렇게 실망을 토로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었는데 망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사람에게 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잠깐 실망감이 들 수 있지만 금방 극복해내야 합니다. 성도는 궁극적으로 물질 때문에 예수님을 믿은 것도 아니고 사람을 보고 예수님을 믿은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생활의 제일 중요한 목표는 구원입니다. 구원은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천국의 아름다운 삶을 사는 실생활의 구원도 중요합니다.

2.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예배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본문 1-2절에서 “영광을 돌리라.”는 말을 3번이나 반복합니다. 즉 “예배하고 예배하고 예배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한 번의 예배로 성자가 되지 않습니다. 고난 중에도 지속적으로 감사하고 영광 돌리는 삶을 살 때 결국 승리합니다. 예배하는 삶은 고난과 시험도 잘 극복하게 합니다. 시련과 고난 중에 절망하지 말고 고난 너머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시련의 홍수를 통해 복 주십니다. 작은 시험엔 작은 선물이 있고 큰 시험엔 큰 선물이 있습니다.

 선수는 훈련을 통해 체력이 강해지고 결국 경기에서 이깁니다. 신앙생활도 시험과 환난을 통해 믿음이 강해집니다. 성도는 시험과 환난의 밥을 통해 힘을 얻습니다. 시련 중에도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합니다. 하나님은 아무 고통도 없이 영혼을 구원하시지 않고 최고의 고통을 통해서 영혼을 구원해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시험을 당할 때도 사랑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배자의 삶을 잃지 않고 변함없이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3. 거룩하게 자신을 단장하십시오
 예배드릴 때 내적인 단장이 중요하지만 깨끗한 옷차림 등을 통해 외적인 단장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2절). 예배 자체도 중요하지만 예배를 위한 사전 준비도 중요합니다. 준비가 있는 만큼 은혜도 있습니다. 헌금도 미리 준비해 정성스럽게 드려야 합니다. 예배 시간도 잘 지켜야 합니다. 예배에 늦는 것은 대부분 습관입니다. 그런 잘못된 습관을 예배 전에 일찍 와서 기도하는 습관으로 바꿔야 합니다. 예배를 위한 사전 준비의 중요성을 깨닫고 마음을 굳게 먹으면 일찍 와서 예배를 준비하는 삶을 습관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앞자리에 앉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은 대개 앞자리에 앉습니다. 예배할 때 앞자리에서 은혜를 사모하며 설교를 들으면 목회자도 힘을 얻고 자신도 더욱 예배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집중할 때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배드릴 때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찬송할 때도 찬송에 집중하면 더 은혜가 됩니다. 말씀도 집중해 들으면 더 은혜가 됩니다. 주일에 드리는 한 시간의 예배를 영혼의 탯줄로 여기고 예배에 집중하십시오. 집중해 드린 한 시간의 예배는 한 주일의 삶을 지탱하게 만듭니다. 

4. 말씀을 사모하며 들으십시오
 다윗은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뇌성을 ‘여호와의 소리’로 묘사하면서 그 묘사를 통해 ‘여호와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함을 강조합니다(3-9절). 즉 성도는 자연의 뇌성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느낄 수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더욱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는 최상의 방편입니다. 참된 예배자가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듣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삶은 참된 예배자의 삶입니다. 참된 예배가 있을 때 축복도 따라옵니다. 예배하는 태도로 사람 됨됨이도 파악됩니다. 사윗감이나 또는 며느릿감을 고를 때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조건은 예배하는 삶의 유무입니다. 살면서 다른 것은 희생해도 예배하는 삶은 희생시키지 마십시오. 일주일 중에 가장 중요한 날은 주일이고 주일에 가장 중요한 시간은 예배하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는 축복과 행복의 원천입니다. 예배의 승리는 인생의 승리로 귀결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2014년 12월 1일 월요일

자녀의 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버지 나라가 임하시오며
아버지 뜻이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이다

자녀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자녀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자녀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자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자녀를 악에서 구원하소서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아옵나이다~ 아멘

2014년 10월 28일 화요일

불안을 증폭시키는 9가지 심리코드

1. 이기심
; 게임 이론가들은 일련의 문화비교 실험을 한 뒤에 '어느 사회에서도 완전히 이기적인 행동으로 게임에 임한 사람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61
; 능동적 탐욕 그리고 수동적 탐욕,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확보되면 한국인의 탐욕은 80% 이상 줄어들 것이다. 65
; '죄수의 딜레마', '공황이론', 결론은 "모두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면 사회는 붕괴한다." 66
;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moral hazard 67
; 누누이 강조하지만, 학교 현장에 경쟁원리를 도입한 것이야말로 한국사회를 파멸로 읶는 결정타 69
; <이웃집 남자>, 이기심은 대인불신감과 사회불신감을 강요한다. 72
; ERISS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 연구소 73
; 정확히 말하자면 이기심은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74

2. 고독
; 고독사- 요시다 타이치 76
; 사랑의 감정이란 사회의 지배적 동기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86
; 자신의 심리적 결함으로 인해 잘못된 동기를 갖게 되고 그것이 사랑의 감정을 좌지우지하면 상대방과 소모적인 '심리적 게임'을 하게 될 수 있다. 87
; 아동학대- 우울한 엄마는 대체로 메마른 감정을 보이고 긍정적인 자극을 주지 못하며 유아의 행동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90
; 아무리 거지 같은 환경에서 키운다 한들, 아이들도 사람인 이상 훌륭한 사회인으로 자라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의지가 현실화되려면 사회가 물심양면으로 뒷받침해줘야 하고,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존경할 만한 어른들이 도처에 있어야 한다. 93
; 성공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에게 열광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사회에 건강한 역할모델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청소년들이 이미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문화에 깊이 잠식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94
; 누군가와 건강하고 질 높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규모가 크건 작건 건강한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반대로 건강한 관계, 건강한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은 우을증과 자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 어른이건 아건 간에 일정 수준 이상의 사람관계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그들은 모두 예비 자살자일 뿐이다. 98
; '급진적 자살', '점진적 자살'

3. 무력감
; 사람이란 원래 무기력과는 거리가 먼 존재이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과 미래를 스스로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강력한 운명통제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절대적인 수동성을 묵인할 수 없다. 그는 스스로 변형되고 변화될 뿐 아니라 세상에 그의 흔적을 남기려 하고 세상을 변형시키고 변화시키려 한다.'- 에리히 프롬 <인간의 마음> 103
; 당연히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사람보다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휠씬 좋아한다. 104
; '욕구가 좌절되면 고통스럽고 욕구가 실현되면 행복하다' 106
; 학습화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 107
; 사람은 무엇이든 해석을 하고 설명을 해서 이해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존재이다. 이는 자기 행동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좌뇌의 '해석자 모듈'
; 사람은 항상 '설명하고 이해'하려 하는 강력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109
; 나약한 사람은 행복을 과거에서 찾고 강인한 사람은 행복을 미래에서 찾는 법이다. 따라서 90년대 이후 새로운 차원에서 생존위협을 느끼게 된 무기력한 한국인들이 과거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것은 필연이며, 생존위협에서 극적으로 탈출했던 어린 시절인 박정희 시대로 퇴행하려 하는 것 역시 필연이다. -스톡홀롬 신드룸 113
;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거둔 가장 큰 승리는 거의 모든 공동체와 조직들을 약화시키거나 궤멸시킨 것, 일단 무력감에 지배당하게 되면 자난 시기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려 어렵게 쟁취한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116
; 청년기- 세계관과 인생관을 세워나감으로써 자기정체성을 확고히 다져나가는 인생에서 둘도 없는 중요한 시기, 청년기의 꿈은 다소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열정적이고 아름답기에, 그 꿈을 포기한 채 세상에 순응하는 인생을 선택하는 청년들은 먼 훗날 후회로 몸부림치게 된다. 20대에 꿈을 저버린 사람들은 후에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118
; 부모의 잘못으로 마음의 병을 갖게 되더라도 자식 세대는 그것을 치유하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듯이, 한국의 젊은이들도 미래를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부모가 반성을 하지 않더라도 자식들은 제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120

4. 의존심
; 우리 역사를 보면 큰 나라에 빌붙어 제 욕심을 채워보려는 사대주의자들이 대를 이어가며 한국사회를 지배해왔음을 알 수 있다.
즉 사대주의는 강자에게는 스스로 머리를 굽히면서 의존하는 동시에 자기자신을 깔보는 자학적인 사상 124
; 사실 사대주의자들의 운명이 항상 비극적으로 끝나는 것은 그들이 숭배하고 의존하는 대국이 사대주의자 보기를 동네 강아지 대하듯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그가 비굴하지 않으면 존경심이 생기고, 아무리 졸개라고 해도 그가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니고 있으면 역겹지 않은 법이다. 즉, 대국들의 지배층도 역시 사람인지라 그들 역시 사대주의자를 속으로는 깔보고 경멸한다는 것이다. 129
; 우리 역사의 특수성 지배세력은 사대주의를 좋아하고, 민중은 혐오한다. 왜? 129
- 지배층의 고유한 사회적 동기, 자신들의 사회 계급적 이익을 위해 백성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지배층은 백성의 힘을 신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몹시 두려워한다. 옛날이건 지금이건 사대주의가 심한 집단일수록 반민중적 집단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 지배층들의 계급적 의존심, 민중의 성실한 노동에 의존하여 자기 배를 불려온 착취자들에게 의존성이란 체질화된 속성일 수밖에 없다.
- 지배층들의 병적인 양육태도, 지배층들의 양육은 한편으로는 자식을 강하게 통제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상품으로 제조해내고, 다른 편으로는 아이들을 부모의 권력이나 돈에 의존하게끔 장려하는 경우가 많다.

;트리클다운TrickleDown 133
- '의존심 확산효과'
- 이 주장은 재벌과 부자들을 경제발전의 주인으로 치켜세우는 반면 다수의 대중을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간주하고 있음.
- 대다수의 국민들을 모두 의존증 환자로 만든다면 경제발전은 절대로 가능할 수 없다. 그것은 모든 일의 기본인 인적 자본을 파괴하면서 경제발전을 추진하겠다는 발상

; 독립심 141, 프로이트는 '부모에게서 독립함으로써 비로서 개인은 더 이상 자아가 아닌,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존재가 되어 타인들과 사랑을 주고받고 나아가 사회 발전에 기여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독립적인 사람부터 되어야 한다. 독립적이지 못한 존재는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없으며, 사회에 도움은 커녕 부담만 주게 된다.
'그는 세계를 향해 열릴 수도 없고 세계를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프롬; '진행형 의존심'과 '퇴행형 의존심' 143
- 퇴행형 의존심은 특히 심각하다, 일반적으로 집단심리 차원에서 움직이므로 그 사회적 영향력이 큼

5. 억압
; 한국사회를 잘 관찰해보면, 사회주의에 대한 한국인들의 강한 거부감이 최소한 사회주의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초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반대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 한국의 지배층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할 만한 정적이나 사회세력은 모조리 사회주의자로 몰아서 죽이거나 탄압해왔다. 149
; 북구 유럽 나라들은 사회주의 이념을 적극 수용해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갖춘 수정자본주의 나라들이다. 
; 이는 다시 말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혼합한 나라일수록 국민들이 행복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51
; 강제로 주입된 불합리한 공포로 인해 한국인들은 여전히 사회주의를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두려워하고 있으니, 애초에 건강한 이념 논쟁이나 정치적 경쟁이 가능할 리 없다. 152
; 한국의 보수세력은 진보세력이 좌경화될까 봐 국보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그것이 거꾸로 임을 말해준다. 즉 한국의 진보세력은 국보법 때문에 할 수 없이 좌경화, 극렬화의 길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또 설사 진보세력이 좌경화된다고 해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국민들이 알아서 선책을 할 텐데. 154
; 경쟁 한번 해보지 못하고 자라나다 보니 한국 보수세력의 기형성과 무능력, 무지 등은 가히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 한국의 보수세력은 인격적 성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반공이라는 깃발 아래 숨어서 사대와 매국, 부정부패, 탈법과 탈세 등 온갖 추악한 짓만 골라서 다 해왔다.
-그들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공직자가 위장전입이나 부동산 투기 좀 하면 어떠냐고 당당하게 떠벌리는 무양심의 파렴치범이 되어버렸다.

사람은 자유로운 연상을 통해 생각을 심화시키고 발전시킨다. 다시 말해 자유로운 연상은 인식과 사고활동을 위해 필수적이다. 162

6. 자기혐오
; '코르다 증후군'- '걷는시체 증후군' 167; 자신이 죽었다고 믿는 이상한 현상을 동반
; '사회적 삶은 항상 사회적 비교의 게임' 169
; 자본주의는 본성적으로 모든 것을 상품화시키는데 사람이라고 해서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자본주의는 초기에는 주로 사람의 노동력을 상품화했으나 점차 사람의 외모, 성적매력, 각종능력 등도 상품화
-그런데 사실 사람에게서 일부 속성이나 능력만을 따로 떼어 상품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사람 자체를 상품화한다고 봐야 한다.
-이때 자본주의가 추진하는 상품화는 프롬이 지적했듯이 자본가들의 이윤추구에 도움이 되는 인간형을 지향한다.
사실상 유럽과 북미에서 승리하고 있는 관료적이고 산업적인 문화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인간을 조직적 인간, 자동인형적 인간, 소비적 인간이라 설명할 수 있다. 게다가 그는 기계적 인간이다. <인간의 마음> 170


;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자기과시욕 173
<사랑의 욕구>, 타인들에게서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
<자존의 욕구>, 자신의 상품가치가 높다는 것을 타인들에게 광고하려는 욕구
; 자기과시병에 걸린 사람은 정상인에 비해 타인과의 비교에 더 몰두하고 그 결과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상처받고 괴로워한다.
; <명품열병>, 로버트 프랭크 -'과시적 소비',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으려는 노력 176
;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몸은 하류층이면서 마음만은 중산층으로 살아가고 있다. 180
-자기혐오감
→계급배반투표로 연결

; 자기혐오감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수용하고 사랑하며, 자신의 잠재력과 사회적 가치를 굳게 믿을 때만 성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7. 쾌락
; '소비형 인간', 자본주의사회의 산물, 즉, 사람이 원래부터 걷잡을 수 없는 소비욕을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매스미디어 등을 통해 소비욕구를 끊임없이 자극당하기 때문에 소비욕이 비대해진다는 것이다. 194
; 현대인들의 성적인 일탈행동은 단지 성욕만이 아니라 병적인 가치관이나 사회적 욕구들이 뒤엉키고 혼재된 결과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니 성범죄가 터질 때마다 성욕을 중심으로 이러쿵저러쿵 논쟁하는 우매한 짓은 이제 그만 두었으면 한다. 195
; 결핍욕구인 생물학적 동기가 아니라 사회적동기를 실현하는데서 행복을 찾자. 206
; 육체적 쾌락주의와 자존감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정확히 반비례한다. 209
; 오늘 한국의 주류세력은 도덕적 권위나 리더십은 고사하고 평범한 이들에게 좌절감과 절망감, 성적 타락만을 강요하고 있다. 만약 한국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평범한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의욕과 희망, 건전한 여가문화를 되돌려주지 않는다면 부조리한 현실이 부과하는 고통과 절망감을 잊기 위한 사람들로 인해 한국의 밤거리는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을 것이다. 212

8. 도피
; '대상중독' 그리고 '행위중독'
; 중독에서 무엇엔가 다가가려는 행동은 거의 전적으로 내면으로 움츠러드는 행동일 뿐이다. 217

; 사이비종교의 심리 222
-불안,  '대체로 삶에 만족하지 못할수록 죽음에 대한 불안은 커진다.' - 어빈 얄롬 
-이기심, 이들은 대체로 '기복신앙'
-의존심, '기적, 혹은 전지전능', 일종의 함포외교
-흑백논리, 겹쌓인 분노를 분출할 수 있는 희생양을 만든다

; 사이비종교의 특징 227
-배타성이 심하고 현실감각이 없다
-집단적 자아도취에 사로잡힌다
-비합리성에 사로잡혀 있다
-감정기복이 심하다

9. 분노
; '욕구좌절-분노이론'
; '도구적 공격성', 공격성의 원인 역시 사회에 있다고 보는 이론 234
; 사람에게는 타고나는 분노, 공격성, 증오심 따위는 없다. 단지 방향을 잘못 잡은, 해결되지 않는 분노감정이 문제일 뿐이다. 236
; '화병', IF(내향감정형) 237

출처 : http://slumdog.egloos.com/3972391
term : 자존과 의존

2014년 10월 27일 월요일

지켜야할 것 vs 버려야 할 것

성경에서 지정하는 절기

레위기 23장에 소개된 이스라엘의 7대 절기 가운데 봄에 지켜야할 4개의 절기 - 유월절과 무교절 그리고 초실절과 오순절은 예수님의 초림 사건으로 이루어질 일(이루어진 일)들을 예표하고 있다. 이에 반해 가을에 지키라 명하신 나팔절과 속죄일 그리고 장막절은 예수님의 재림 사건 때 일어날 사건들을 예표하고 있다. 이 세 절기 가운데 ‘Rosh Hashanah’로 알려진 나팔절은 특별히 예수님의 공중재림과 이때 일어날 ‘휴거사건’을 예표하고 있다.

휴거사건을 설명하고 있는 대표적인 성경 구절 가운데 하나인 고린도전서 15장 52절에서는 바로 이 휴거의 사건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휴거의 사건 때, 살아있는 성도들이 변화되는 일과 함께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되고 부활한 영광스런 모습으로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으러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처럼, 휴거의 사건을 예표하고 있는 나팔절은 성도의 부활 사건을 소망하는 절기이기도 한 것이다.


세상에서 지정하는 절기

마르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로마 카톨릭을 대항하여 카톨릭의 타락상을 고발하는 95개 조항이 기록된 문서를 독일의 위텐베르크에 있는 성당의 문에 계시함으로써 종교개혁을 일으킨 날이다. 그 종교개혁으로 인해서 잃어버렸던 성경을 다시 평신도들의 손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참 신앙의 길이 열리게 된 중요한 날이다.

한편 10월 31일 이날에 서양의 많은 크리스챤 가정의 자녀들이 이방종교에서 기원한 풍습에 젖어 들어 있다. 바로 할로윈 데이를 즐기는 것이다. 할로윈 데이는 개신교와 정 반대되는 날인 것이다. 특히 오늘날의 할로윈 데이는 ‘할로윈 코스튬’이라고 해서, 사람(귀신)들을 놀래키기 위해서 얼마나 기발하고 기괴한 분장을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프랑켄스타인, 뱀파이어, 좀비로 분장한 사람들이 길거리를 활보하며, 파티를 열어 웃고 즐기는 날로 변모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어떤 개신교의 교회에서는 Halloween Day 에 크리스챤 자녀들이 이방 민족의 풍습을 본받지 않게 하려고 교회 내에서 10월 31일을 “종교개혁일”로 지키면서 자녀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14년 10월 23일 목요일

좀비의 의미?

  최근 전세계적으로 좀비에 관련된 영화와 드라마가 유행하고 있다.  광견병 바이러스를 변이 시킨 좀비 바이러스가 실제로 개발되었다는 소문이 도는 가운데 World War Z와 같은 좀비 영화를 퍼뜨리는 데는 의도된 목적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좀비 바이러스의 개발, 확산 혹은 각종 매체들을 동원해서 좀비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특별한 목적, 즉 '좀비 어젠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World War Z뿐 아니라 최근 유행하고 있는 좀비 영화와 드라마들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들이 바로 지구의 안위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악의 세력이 추진하고 있는 depopulation(인구감축 혹은 인류학살)계획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일종의 심리전(마인드컨트롤)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장차 악의 세력이 꿈꾸는 세계정부(New World Order)가 세워질때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모두 지구를 위협하는 좀비와 같은 존재로 여겨 제거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좀비 바이러스의 확산과 같은 국가적인 재난이 닥쳐올 때, 곧바로 계엄령이 선포되고 비상체제로 전환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실제로 2012년 여름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는 좀비 바이러스가 확산될 경우 취해야 할 행동 요령을 담은 만화를 배포하였고,  10월에는 미군과 경찰, 의료진, 연방 공무원 등 1,000여 명이 참가하는 '좀비 대 재앙 대비훈련을 실시하기도 했었다.

  좀비 바이러스 혹은 경제 붕괴 혹은 3차 대전과 같은 전 세계적인 재앙이 닥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UN에 귀속시키고 결국 UN의 지시(통치)를 받는 세상(New World Order)이 오게 된다는 것이다. World War Z에서 Z는 Zombie의 약자이다.  '좀비와의 전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Z라는 글자에는  인류의 마지막(오메가 혹은 Z) 전쟁(World War III 3차 대전?)에 대한 상징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0월 8일 수요일

내안의 교회는 구원의 방주인가 침몰하는 배인가?

마태복음 16:15~19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예수님이 처음으로 말씀하셨던 교회는 베드로의 고백을 바탕으로 세워진 무형의 존재이다. 이 말씀을 보면 교회의 본질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고백하는데 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로 고통받는 세상에서 영원히 죽지않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로 그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시고 그 방법들을 말씀해 주셨다.

창세기 6:7~9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가 살던 세상도 죄악이 만연하여 하나님은 모두 물로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던 노아가 만든 방주를 통하여 그의 가족과 동물들은 물로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만드신 교회가 구원의 방주가 되려면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구원의 주로 고백하면 된다. 그러면 구원의  방주 안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수박 겉핥기로 건물인 교회안에 있으면서도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고 그를 잊어버리고 다른 이야기만 한다면 구원의 방주 밖에 있는 것이다. 침몰하는 배도 아닌 것이다.

노아의 방주의 열쇠가 노아에게 있었던 것처럼,
자, 벌써 구원의 방주된 교회의 열쇠가 그를 구원의 주로 믿고 고백하고 그의 선한 말씀을 따르는 자들의 손에 주어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은 기도이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기도하라 
본문 : 시편 56편 1 - 13절 마경훈 목사 

본문 : 시편 56편 1 - 13절(개역개정) 
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2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5 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 
6 그들이 내 생명을 엿보았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발자취를 지켜보나이다 
7 그들이 악을 행하고야 안전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3절에 보면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정말 두려울 만큼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입니다.당시 다윗은 상당히 위험하고 비참한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힘이 들면, 인생의 짐이 너무나 무거우면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때 다윗도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정신이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계속해서 추격합니다. 추격을 견디다 못한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곳은 다윗에 의해서 죽은 거인 골리앗의 땅 블레셋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골리앗의 땅으로 도망을 치면서 제사장 아히멜렉으로부터 받은 골리앗의 칼을 손에 든 채로 갔습니다. 골리앗을 죽인 장본인이 골리앗의 칼을 든 채로 골리앗의 땅으로 갔으니 기름을 짊어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했던 것은 그만큼 정신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 56편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밝히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2절에서는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라고 말합니다. 다윗을 치려고 하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많았다는 것입니다. 5절에 보니까 사람들이 다윗이 하는 말마다 곡해합니다. 좋은 말을 해도 나쁘게 받아드립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꼬투리만 잡는 것입니다. 6절에 보니 그들은 다윗의 생명을 죽이려 합니다. 그리고 모여 숨어서 다윗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합니다. 7절에 보니까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사람들은 상황이 좋은가 어려운가에 관심을 갖지만,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아니면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의지하느냐를 보십니다. 
다윗은 어땠습니까? 다윗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서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3절에 보니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라고 말했고, 4절에서도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라고 말하고, 10절에서는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라고 고백합니다. 11절에서는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아니한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행동은 기도였습니다. 시 56편은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다윗은 1-6절까지 원수들이 자기에게 행하는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아뢰고 있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자기를 괴롭히는 친구들에 대해서 엄마, 아빠에게 일러바치듯이 다윗도 자기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일러바치는 듯합니다. 그러면서 7절에서 원수들을 심판해 주실 것을 구합니다. [그들이 악을 행하고야 안전하오리이까(악한 자들이 안전하게 산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하나님 원수를 갚아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를 하면 다윗은 두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일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해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무엇을 해주시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두려움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사람이 당하는 많은 형벌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두려움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두려움 그 자체가 형벌을 가져다줍니다. 요일 4:18에 보면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두려움은 그 자체가 형벌입니다. 어떤 모임에서 분위기를 up시키기 위하여 돌아가면서 노래하기로 했습니다. 이 때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자연스럽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야 괜찮겠지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그 때부터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자기 순서가 가까워 올수록 가슴은 뛰기 시작하고 두려움과 불안으로 손발까지 떨리기 시작합니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신나는 시간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고통의 시간입니다. 
두려움을 갖게 되면 자신이 가진 능력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판단력도 흐려집니다. 
다윗은 그런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더니 두려움이 물러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3절에서는 두려워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4절에 보니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라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불안합니까? 세상사는 것이 두렵습니까? 그렇다면 나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의지하는 그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두려움은 물러가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가운데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제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두려움이 찾아오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그 때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있으면 목회할 맛이 사라집니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소망은 작아지고 절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다가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시는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하면 마음에 믿음이 확 들어오게 되고 두려움은 차츰 물러가고 점점 평안이 충만해 집니다. 그러고 나면 놀랍게도 제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감당하게 됩니다. 
두려운 일이 발생하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지 마세요. 불안해하고 근심하며 시간을 보내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세요. 두려움을 사라지고 평안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환경을 바꿔주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눈물을 기억하십니다. 
세상 살다보면 눈물 흘릴 일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무 곳에서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주책없는 눈물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리면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8절에 보니까 기도하는 사람들의 눈물은 주님의 눈물 병에 담으십니다. 그리고 그 눈물이 눈물 병의 아구를 채우게 되면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물병에 물을 붓는데 가득 차게 되고 가득 차도 붓게 되면 흘러넘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많이 울면 울수록 좋은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부탁을 하는데 그냥 부탁하면 들어 줄 수도 있고 안 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면서 부탁을 하면 왠만하면 다 들어주게 되어 있습니다. 
왕하 20장에 보면 히스기야 - 몸에 병들어서 죽음을 앞두고 기도하니 하나님의 응답이 떨어졌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눈물 흘릴 일 많으시죠. 사람 앞에서 울지 말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우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눈물이 하나님의 눈물 병에 채워지게 될 것이고 그 눈물이 하나님의 응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시 84:6절을 찾아보세요. 

3.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편이 되어주십니다. 
9절에 보면 다윗은 고통 중에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셔서 원수들이 물러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신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시 118:5-6 고통 중에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원수를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여호와는 내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몸이 작고 외소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형제들은 몸집이 큰데 유독 형제 가운데 그 사람만 외소 합니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어릴 때 울지 않아서 엄마가 젖을 잘 물려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울면 엄마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젖을 먹이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르짖어 기도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자식 중에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엄마에게 딱 붙어서 아양을 떨고 결국은 필요한 것을 받아내는 여우같은 자식이 있는가하면, 필요한 것이 있어도 곰 같이 참아내기만 해서 아무것도 받아내지 못하는 자식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 편에 서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보면 받게 되는 여러 가지교훈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을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형에서를 20년 만에 만나는데 형이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 때 야곱이 기도하고 하나님이 야곱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셨습니다. 에서의 마음이 녹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는 에서보다 기도하는 야곱의 편에 서주셨습니다. 
힘들어도 새벽에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기도하는 내편에 서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의 편에 서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는 것보다는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변화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의 편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감사거리를 주십니다. 
12절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감사제를 드리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응답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감사거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감사거리를 주신다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달리생각하면 기도하면 감사거리가 보이게 하십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한 교회에 부임하여 부임 심방을 하는데 어느 집사님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벽에 보니까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해서 상장을 가득 걸어 두었습니다. 목사님은 "아들이 공부를 참 잘하네요." "예, 우리 아이는 머리가 비상합니다." 목사님이 또 집사님 얼굴을 쳐다보면서 "집사님은 참 미인이십니다." 하니까 그 집사님이 "예, 저의 친정어머니가 예뻐서 저도 예뻐요"라고 합니다. 목사님은 또 "가구가 참 좋네요. 텔레비전도 오디오도 아주 좋은 것 갖고 계시네요." 하니까 그 집사님이 "예, 저의 남편이 돈을 잘 벌어서 괜찮은 가구를 들였어요."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건드려도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지요"라는 말이 안나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하나님이 은혜를 거두시면 좋은 머리가 무슨 소용 있으며, 예쁜 얼굴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거두시면 그 날로 무너지는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한번 고백해봅시다. 따라 해보십시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가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는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어 잘한다고 잘살고, 성공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 합니다. 필리핀 사람들 영어 잘합니다. 그래도 못살잖아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영어는 하나님과 사람을 더 잘 섬기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5.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이 실족하지 않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별일 아닌데 시험에 들고 실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은 실족하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한편 봤습니다. [록키 발보아]라는 영화입니다.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최고의 헤비급 챔피언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한 록키. 록키의 즐거움은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들에게 과거에 화려했던 자신의 복싱경기 얘기를 들려주는 것. 그러던 어느 날, 한 유명 스포츠 TV에서 록키와 현재 헤비급 챔피언인 매이슨 딕슨과의 가상경기를 중계합니다. 이 가상 경기는 상상 외의 큰 인기를 끌고 딕슨의 프로모터와 언론은 록키와 딕슨의 실제 경기를 록키에게 제안합니다. 이 소식은 전 미국을 들끓게 만들고, 록키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일생일대의 대결을 앞두고 그의 오랜 친구이자 트레이너인 듀크와 아들의 도움을 받아 훈련에 들어간 록키. 그리고 마침내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젊은 챔피언 복서 메이슨에 맞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마지막 경기를 펼치는데. 결국 게임에 지긴 했지만 그 영화에서 록키는 영화를 보는 사람들 안에 있는 도전정신에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대사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록키가 아들에게 하는 말인데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네가 어떻게 얼마나 세게 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야...네가 얼마나 세게 맞았던지간에....네가 어떻게 일어서서 나아갈 수 있느냐가 중요한거야..그게... 승자가 승리하는 이유야.]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이 실족하지 않도록 붙들어주십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지더라도 여덟 번 일어납니다. 13절에 보니 다윗의 아름다운 고백이 나옵니다. 주님이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져주셨답니다. 주님께서 기도하는 다윗에게 빛을 비춰주셔서 실족하지 않게 하셨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살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특히 지금은 말세지말입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는 우리의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일들을 행하십니다. 

1.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두려움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2.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눈물을 기억하십니다. 
3.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편이 되어주십니다. 
4.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감사거리를 주십니다. 
5.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이 실족하지 않게 하십니다. 

2014년 9월 4일 목요일

세계인구로 본 종말의 시기와 의미

세계인구를 추정하는데 잘 알려진 아래의 공식으로 계산할 수 있다
n=세대, 2C = 자녀수(딸,아들), x=평균 생존 세대수


c=2, x=2로 가정하여 계산하면
5세대 후 인구 = 96명
10세대 후 인구 = 3070명
15세대 후 인구 = 98,300명
20세대 후 인구 =  3,150,000명
30세대 후 인구 = 3,220,000,000명
한 부부로 시작하여 30세대가 지나면 인구는 무려 32억명으로 증가한다
여기서 한세대만 증가(31세대)해도 64억명으로 증가하고 32세대는 무려 129억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세계인구에 대한 그래프들은 많이 나와 있다
21세기에 진입하여 수직으로 상승하는 그래프를 보면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짐작할 수 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트랜드를 보라(Vertical Ramp)
저 자체적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2011년 기준으로 세계인구는 70억명이다




현재 인구 증가율은 약 2%이지만 과거에는 이보다 훨씬 증가율이 낮았는데 3세 이하의 생존율이 낮아서 0.1% 미만이었다고 알려진다
(사실 영아들이 인종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모두 천국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면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세계인구는 얼마였을까?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세계인구 추정치는 2.1억명 수준이다
1492년 5억, 1804년 10억, 1922년 20억, 1959년 30억, 1975년 40억, 1986년 50억, 1999년 60억, 2011년 70억
2025년에는 90억, 2039년에는 130억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인당 경작지는 2006년에 인당 1.15에어커가 있었으나 2039년에는 손실분까지 포함하여 인당 0.53에어커만 남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도 식량이 부족한데 경작지가 절반이하로 감소한다면 식량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홍수 후 현재까지 살았던 인구는 약 105억명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인구는 전체에서 약 3~4% 정도에 해당한다고 한다
인구증가율 측면에서 보면 시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적당한 타이밍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아래 그래프다
노아 대홍수 심판의 인구 증가 트랜드와 현재의 인구 증가율 트랜드가 유사하다는 것이다
노아 대홍수 당시 인구 증가 트랜드와의 유사성은 오늘날 인구 통계학 측면에서도 종말의 때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노아 홍수 이전에는 수명이 길었기 때문에 창조 후 약 2300여년의 기간동안 홍수전 세계인구는 약 90억명으로 추정한다
그들 대다수는 수명이 길어 살아 있었고 홍수로 일시에 죽은 그들을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3일동안 음부에 영으로 내려가 복음을 전파하셨다
이들은(90억) 홍수 때에 음부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의 수많은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베전 3:19~20) 

홍수 후 약 5000년의 세계인구를 추정하면 현재의 인구에 근접한다
실제로 1650년에서 1850년 사이의 인구 변화에 기초한 인구 통계학 평가 자료는 BC 3300년경에는 오직 한 가족만이 존재했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 대홍수가 발생한 시기는 맛소라 사본의 연대기에 따르면 약 bc 2456년, 70인역 연대기에 의하면 약 bc 3071년이다

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류가 100만년전에 존재해 왔다면 인구성장율을 0.01%로 매우 낮게 잡아도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인구는 2*10^43으로 2뒤에 0이 43개나 따라온다
그 많은 인구를 빽빽히 채워도 아홉개의 행성을 가진 태양계 1000개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인구 통계학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역사는 성경의 연대기에 잘 맞아 떨어진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또 있다
그것은 홍수 후 지금까지의 누적 인류가 105억명이라고 할 때 이 중 70%(73억명)가 생존해 있다는 것이다
단 30%(32억명)만이 죽은 상태이다
만약 오늘날 휴거가 발생한다면 홍수 후 전체 인류의 70%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예수를 몰라서 구원의 기회가 없었다는 주장도 인구통계학 관점에서 보면 빛이 바래진다)
휴거 때에 죽은 자 중 순교자들이 먼저 부활한다고는 하지만 휴거의 주인공은 결국 대다수 살아있는 자들 70%를 위한 사건이 될 것이다
인구 통계학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고 성경에 그렇게 자주 재림에 대한 성도의 준비를 강조한 이유일 것이다

10처녀 비유에서 보면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는 비유가 나온다
이 비유에서 말하는 시사점은 일단 이벤트가 일어나면 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빨리 교회로 달려가서 회개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벤트는 번개가 번쩍이는 것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비유의 또 다른 시사점은 그 때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도
있다
하루 이틀 전이나, 한달 전 쯤에 예측 가능한 징조들이 나타나서 준비 할 수 있게 할 수 없다는 교훈도 있다
한번 사건이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
결국 준비라는 것은 지속적인 과정일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처녀들이 잠을 잔다는 것은 종말의 지연성, 그로 인해 인내의 시기에 살아남은 신부들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옮김 : http://blog.naver.com/acoloje

2014년 9월 2일 화요일

사춘기 대화법 :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하지 말아야 할 말 해야 할 말[강금주, 북클라우드]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부모의 말부터 달라져야 한다

고분고분 말 잘 듣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대답이 느려지고, ‘다 귀찮다’며 짜증을 부리기 시작한다. “응, 알았어”, “네, 그럴게요” 하던 것도 “왜?”, “왜 그래야 돼요?”, “안 하면 안 돼?”라고 말대꾸하고 반항한다. 아이에게 사춘기가 온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행동이며, 말투며, 사소한 버릇까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데, 뭐라고 해 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고 감정만 상할 것 같아서 아이 눈치만 보며 끙끙거린다. ‘저 더러운 성질 안 건드리는 것이 낫지’, 혹은 ‘나만 이러는 건 아닐 거야. 사춘기 아이를 어떻게 말로 다스리겠어’ 하면서 그 자리를 피해 버린다. 
하지만 그렇게 참고 넘어갈수록 아이의 사춘기 문제 증상은 심해지고, 대화도 점점 힘들어진다. 결국 아이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순간을 놓치게 되고, 어느덧 아이와 대화가 되지 않는, 대화를 하지 못하는, 대화를 할 수 없는 부모가 된다. ‘말썽 부리는 애와 사는 부모’가 아니라 ‘대화를 못하는 부모와 살고 있는 아이’로 상황이 역전되는 것이다. 
청소년과 학부모 전문 상담자이자 [십대들의 쪽지]의 발행인으로, 지난 30년간 대한민국 십대들의 생각과 마음을 읽어 온 저자는 부모가 사춘기 아이와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려면, 그 답은 결국 ‘대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말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사춘기 문제 증상도 일차적으로는 ‘대화’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부모의 대화법부터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십대들의 쪽지] 강금주 대표가 알려주는
아이 마음을 여는 부모 대화법

그런데 ‘대화가 사춘기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더 답답해한다. 크렘린 궁전보다 더 꽁꽁 닫힌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열고 대화를 해야 할지, 아이에게 어떤 말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쩌다 대화를 시작해도 서로 마음에 상처만 남길 뿐 대화는 전혀 되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그렇다면 아이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부모는, 왜 내 아이와 대화가 어려울까? 
이에 대해 저자는 가장 먼저 부모 자신부터 돌아볼 것을 권한다. 사춘기 아이와 대화가 안 된다는 부모는 대체로 듣기보다는 말하는 부모이거나 아이의 감정은 읽지 않고 해법만 이야기하는 부모, 모든 대화의 결론을 ‘성적’으로 끝내는 부모, 아이에게 이상한 점을 발견해도 ‘별일 없을 거야’ 하면서 묻지 않고 넘기는 부모일 확률이 높으며, 이러한 태도와 화법이야말로 대화를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터진 후에야 ‘우리 애한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고 의문을 갖는 부모는 일상적인 대화가 없었다는 뜻이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춘기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편안하게 대화하고 싶다면 부모 자식 간의 대화에도 기술이 필요하며, 부모는 그에 관한 공부와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또한 아이가 문제없이 잘 자라도록 돕기 위해서는 부모가 평상시 반드시 익혀야 할 대화 습관이 있다고 말한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먹고 자란다!
내 아이의 올바른 변화와 성장을 위해 꼭 알아야 할 대화의 기술

이 책은 사춘기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문제없이 대화하고 싶은 부모들을 위한 대화 지침서다. 사춘기 아이와의 대화를 남북정상회담만큼 어렵게 생각하는 부모들을 위해 아이가 하는 말의 속뜻을 읽어 주고, 이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화를 이끌어 가면 좋은지 그 방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특히 편안한 관계를 만들어 주는 9가지 대화의 기술은 사춘기 아이뿐 아니라 모든 학부모들이 미리 익혀 두면 좋은, 매우 유용한 대화법이다. 시간, 장소, 말투, 꾸짖기, 질문하기, 되묻기, 칭찬하기, 추임새 넣기, 침묵 등 9가지 대화의 기술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도와준다. 
이 밖에 저자가 두 아이의 사춘기를 겪으면서 경험한 ‘주말 1시간 대화법’은 아이의 마음과 생각을 성장시키는 시간으로 활용하기 좋으며, 아이가 보이는 문제 상황별 대화법은 내 아이의 사춘기 문제 증상을 말로 변화시키고 싶을 때 읽으면 도움이 된다. 책에 소개된 대화법과 실전 지침은 30년간 수많은 십대와 학부모들을 상담하면서 쌓아온 저자만의 경험과 노하우이기에 믿을 수 있으며, 실제로 이 대화법을 통해 많은 부모들이 사춘기 아이와의 어긋난 관계를 회복했다. 
아이가 밝고 따뜻하고 근심이 없는 행복한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일상 속에서 자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런 대화 속에서 아이는 위대한 인생을 설계한다. 사소한 말이 생략되었을 때 아이가 잃는 것은 사소한 기회가 아니라, 부모의 지지 아래 만들어 갈 수 있는 위대한 인생의 기회다. 더 늦기 전에, 바로 지금, 내 아이와 대화를 시작해 보자. 이 책이 그 길을 걷는 당신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2014년 8월 25일 월요일

북포맥결심전(北浦脈訣心傳)

북포맥결심전(北浦脈訣心傳)  


다음은 황대석 할아버지가 맥진법을 요약하여 필자에게 물려준 <북포맥결심전(北浦脈訣心傳)>의 내용을 오늘날의 병증에 맞게 해석하여 정리한 것이다.
<모름지기 한의(韓醫)는 환자의 맥을 잘 살펴서 오장육부의 음양(陰陽) 허실 상태를 관찰하고, 병의 경중(輕重)을 살펴야 한다. 그런데 요즘 한의들은 병명에만 치중하고, 맥진법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일은 한방 본래의 철학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원래 한방은 병명보다는 증세를 살펴 치료하는 걸 근본 원리로 삼고 있다. 설령 병명은 확실히 몰라도 증세를 확실히 진단만 한다면 치료는 쉬워진다.
맥진법은 촌(寸)·관(關)·척(尺) 세 부위를 짚어 맥의 부(浮)·중(中)·침(沈)을 살피는 것이다. 맥은 너무 과해도 병이요, 부족해도 병이다. 영(營)은 혈(血)이고, 위(衛)는 기(氣)이다. 영과 기가 고르게 흐르면 맥이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평맥(平脈)이 된다. 맥진법을 다 표현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오랜 경험을 통하여 스스로 깨우침을 얻어야 한다.
맥진법을 간략히 설명하면 부맥(浮脈)은 손가락 끝을 피부에 살짝 대어 유력(有力)하게 감지되는 경우이다. 반면 약간만 눌러도 숨게 된다. 침맥(沈脈)은 꾹 눌러도 약하게나마 감지되는 경우이다. 지맥(遲脈)은 맥이 느리게 뛰는 경우이고, 삭맥(數脈)은 맥이 빠르게 뛰는 경우이다. 활맥(滑脈)은 맥이 미끄러지듯이 뛰는 경우이고, 색맥(嗇脈)은 맥이 깔깔하게 뛰는 경우이다. 또 허(虛)는 무력(無力)하고, 실(實)은 유력(有力)하며, 홍(洪)은 광대(廣大)하고, 미(微)는 있는 듯 없는 듯한 경우이다. 또한 현(弦)은 거문고 줄처럼 팽팽한 경우이고, 긴(緊)은 팽팽하면서 말을 잘 안 듣는 경우이고, 공(孔)은 대파 잎 누르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이 모든 건 평맥(平脈)이 아닌 경우로 병증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① 맥진 부위 고골(高骨=요골경상돌기)에서부터 위쪽으로 검지·중지·약지를 차례로 가지런히 살짝 댄다. 검지를 댄 곳을 촌(寸)이라 하고, 중지를 댄 곳을 관(關)이라 하며, 약지를 댄 곳을 척(尺)이라 한다.
왼쪽 손목의 촌(寸): 살짝 댄 검지에서 느껴지는 맥박이 심장맥이고, 꾹 눌렀을 때 느껴지는 맥박이 소장맥이다.
왼쪽 손목의 관(關): 살짝 댄 중지에서 느껴지는 맥박이 간장맥이고, 꾹 눌렀을 때 느껴지는 맥이 쓸개맥이다.
왼쪽 손목의 척(尺): 살짝 댄 약지에서 느껴지는 맥이 남자의 경우는 신장, 여자의 경우는 자궁이고, 꾹 눌렀을 때 느껴지는 맥이 방광맥이다.
오른쪽 손목의 촌(寸): 살짝 댄 검지에서 느껴지는 맥이 폐맥이고, 꾹 눌러 느껴지는 맥이 대장맥이다.
오른쪽 손목의 관(關): 살짝 댄 중지에서 느껴지는 맥이 비장맥, 꾹 눌러 느껴지는 맥이 위장맥이다.
오른쪽 손목의 척(尺): 살짝 댄 중지에서 느껴지는 맥이 명문맥, 꾹 눌러 느껴지는 맥이 삼초맥이다.

② 맥진에 따른 질병 진단 심장맥: 맥이 삭대(數大)하면 혈압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고, 미약하면 저혈압으로 판단할 수 있다. 뛰다 안 뛰다 하면 부정맥(不整脈)과 심장병이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소장맥: 소장맥은 안 뛰어야 한다. 반면 맥이 뛰는 게 감지되면 장염으로 판단할 수 있다.
간장맥: 맥이 삭대(數大)하면 간염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게 오래되면 간경화와 간암으로 발전한다. 반면 미약하면 간장의 조혈기능이 약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면 빈혈이 생겨 어지럽고, 가슴이 두근두근하게 된다. 또 간장맥이 미약하면 신장맥도 미약하게 된다. 그러면 가슴이 답답하고 울렁울렁하는 증상과, 팔다리가 저리거나 쥐가 나는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머리도 가끔 아프고, 눈도 피로하고, 허리도 아플 수 있다.
쓸개맥: 쓸개맥은 안 뛰어야 한다. 반면 맥이 뛰는 게 감지되면 담석증이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게 심해지면 황달이 따른다.
신장맥: 맥이 삭대(數大)하면 신장염으로 피로도 오고, 부종도 따른다. 여자는 자궁염증이 심해 냉과 부종이 따른다. 또한 생리불순과 불임이 따른다. 반면 맥이 미약하게 뛰면 정력 부족으로 피로와 무기력증이 따른다. 사람이 죽을 때는 신장맥이 먼저 멈춘다.
방광맥: 방광맥은 안 뛰어야 한다. 반면 맥이 뛰는 게 감지되면 방광에 열이 찬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방광에 열이 차면 대개 소변이 노랗게 나오는데, 이 경우 당뇨병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이런 증세가 지속되면 방광염증이 생겨 소변이 붉게 된다.
폐맥: 맥이 삭대(數大)하거나 미약하면 폐병으로 판단할 수 있다. 맥이 약하게 뛰는 폐병이 더 위중한데, 이 경우는 폐에 핏기가 없이 말라붙은 것이다. 맥이 부대(浮大)하게 감지되면 기관지가 좋지 않은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대장맥: 원래 안 뛰어야 한다. 맥이 뛰는 게 감지되면 대장염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게 오래 되면 혈변이 생기고 암이 될 수 있다.
비장맥: 맥이 삭대(數大)하거나 미약하면 비위가 상하여 음식 맛을 모르고, 식욕 상실이 따른다. 임산부들은 입덧이 심하다.
위장맥: 위장맥은 안 뛰어야 한다. 맥이 뛰는 게 감지되면 위염과 십이지장궤양이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또 약간 끊어졌다가 뛰다가 하면 위장이 냉하거나 위장에 습기가 차 있기 때문이다.
명문맥: 원래 세게 뛰지 않는다. 그러나 뛰지 않으면 명(命)이 다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삼초맥: 맥이 삭(數)하면 위에 가스가 차고 열이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맥이 침(沈)하면 체기가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젖 먹을 때 체해 있는 것도 삼초맥을 보면 판단할 수 있다.
임신맥: 자궁이 차갑거나 덥거나, 자궁에 가스가 차 있거나 염증이 있으면 불임이 된다. 자궁과 간과 심장과 비장의 맥이 세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으면 임신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