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죄는 남의 것을 취하는 것만 한정하지 않는다. 내것이라고 정하는 것도 죄라는 것이다. 죄의 시작은 하나님의 것인 선악과를 내것으로 만든 것이다. 가인과 아벨에서도 보여주듯 내것을 제사로 받지 않았다는 분노에 또 다른 죄를 짓게 된다. 바벨탑사건도 탐욕에 의해 내가 가진 위상을 하나님만큼 높이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기서도 내것이 주장된다.
내가 가진 것이 엄청나게 많다 하더라도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제한된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하기 보다는 오히려 내가 가진 것을 가지지 않은 자와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더욱 풍성해질수 있는 기반이 된다. 내가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것에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나 라는 존재자체가 벌써 죄의 시작인 것이다. 기본이 되는 나의 영혼에 나를 구성하는 육체만큼 하나님의 것을 빌려와서 내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남들에게 마음껏 유린하도록 내어주신 것을 통하여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보여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율법을 지킨다 하면서 자기 것을 나누지 않았던 유대 지도자들을 예수님은 위선자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셨다. 특별히 부자청년의 영생을 얻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결국 부자의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라 대답하신다. 죄의 결과는 가난이 아니라 부를 축적함으로 인한 하나님의 앞의 사망이므로 죄의 용서는 부를 버림으로 얻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영생을 주시기를 원하시지 사망을 주시기 원하지 않으신다. 그 영생의 통로를 예수님의 말씀에 열어 놓은 것을 믿음으로 알고 받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죄와 관련하여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세상이 대하는 두 방향을 본다.
아담과 예수님의 시험에 대한 대처법이다.
아담은 아무 생각없이 하나님의 금지된 것을 실행했다.(육신정욕, 안목정욕, 이생자랑)
예수님은 성경말씀에 비춰보고 금지된 것을 하지 않았다.(오직 하나님의 영광)
아담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벌거벗은 몸의 수치를 느끼며 내것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후손들이 쌓은 바벨탑을 통하여 내것이라는 것을 형상화 시킬 수 있었다.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속의 내것의 영광을 탐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상기시키셨다.
예수님이 내것을 버리는 첫번째 희생의 영광이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내신 것이다.
시대는 점점 더 복잡해 지고 있고 법은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러므로 더욱 핵심되는 것을 잊지말고 붙잡아야 하는 시기이다.
법이란 험악한 죄로부터 내것을 지킬수 있도록 서로가 돕는 장치이다.
그러나 이것은 힘있는 자들의 자기것을 지키는 도구로 더 크게 이용되고 있다.
성경에서 구약으로 정해진 4천년의 시대는 성부 하나님의 율법이 다스리는 시대였다.
하나님의 법을 통해 내것을 내려놓으라고 하였으나 세상은 더욱 내것을 가지려 하였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진정으로 내것을 버리는 표적을 보여주셨다.
그후 2천여년간 성령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다스리는 시대로 흘러오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내것을 가지려고 하는 근본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자기것을 버리라고 가르치시고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라 하셨다.
그러나 거기에는 내 죄에 대한 회개와 남의 죄에 대한 관용(용서)이라는 댓가가 필요했다. 왜냐면 죄는 나만 짓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에게 지은 죄로 인해 나에게 상처가 있기 때문에 이 상처로 인해 더욱 나는 남으로 부터 내것을 지켜야 했다. 그러므로 내 죄에대해 철저한 내 죄의 길에서 벗어나고 타인의 죄에 대해 용서를 선포하여 성령께서 그 상처를 치료해 주시면 이때부터 내것의 경계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것을 마음껏 다 주시고 자신의 몸과 피도 죄인들인 남들에게 맘대로 하도록 버리듯이 내어주셨다. 세상에서는 용서를 구하는 사람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을 노예로 삼으려고 하고 생명까지도 마음대로 하려 한다. 어떻게 하고 무슨 일을 나에게 할지 모르기 때문에 매우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영생의 관문이라는 것이다. 성령께서 도와주시므로 가능하다고 하신다. 그 길을 가라고 하신다. 그것이 진리라고 하신다. 그것이 생명이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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